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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릴레이

“ ‘교장 바보’라는 낙서에 ‘공수인사’로 화답 ”

[경향신문, 2017.03.31.(금), 23면, 사람]

 

“ ‘교장 바보’라는 낙서에 ‘공수인사’로 화답 ”

 

ㆍ서울교육청 평생진로교육국 박혜자 국장
ㆍ밥 먹이기·텃밭 만들기 등 현장친화 활동에 ‘학원폭력 0’ 기록
ㆍ장학관서 곧바로 국장 승진 기록…“현장을 꼼꼼히 살펴 개선”

“여자는 ‘약하다’ ‘추진력이 없다’ ‘판단이 느리다’는 선입견이 있지만 사실이 아니잖아요. 나쁜 딱지가 붙지 않도록 더 열심히 할 겁니다.”


지난 1일 서울시교육청 평생진로교육국장에 임명된 박혜자 장학관(56)은 시교육청 여성 1호 국장이다. 학교폭력·직업교육·장애학생 지원부터 급식, 미세먼지까지 관할하는 평생진로교육국은 본청 직원만 100여명에 이르고 관내 학교의 주요 정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장학관을 거쳐 교육장을 맡아야 올 수 있는 보직이지만, 박 국장은 올해 장학관에서 곧바로 승진하는 깜짝 인사로 교육계에서 화제가 됐다. 비결은 교육불평등 해소를 위한 현장 친화적인 교육활동이었다.


30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박 국장은 2010년 9월 교장으로 처음 발령난 한 달 동안 밤마다 악몽에 시달렸던 일을 먼저 꺼냈다. 박 국장이 부임한 서울 노원구 녹천초등학교는 소위 ‘비선호’ 학교였다고 했다. 학교 복도에는 래커로 욕이 칠해졌고, 학생들이 철제문을 이단옆차기로 부수기도 했다. 박 국장이 집단 괴롭힘 현장을 발견하고 뜯어말리면, 아이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야유를 보낼 정도였다. 며칠이 지나자 학교 복도에 “혜자바보”라는 거대한 낙서까지 등장했다. 박 국장은 “ ‘아무개 선생님 미친X’ 욕이 안 써 있으면 열정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겠다”고 선포하고, 본격적인 학교 회복에 나섰다.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박 국장은 부임 둘째 주부터 교문 앞에서 오전 8시20분부터 9시까지 ‘공수인사’를 시작했다. 90도로 인사하는 교장선생님을 보면서 아이들은 “오버하네, 언제까지 하나 보자”고 수군거렸다. 박 국장은 오히려 쫓아가 인사를 했다. 변화는 한 주 만에 찾아왔다. 저학년 학생들은 맞인사를 하려 줄지어 서고, 고학년 학생들도 ‘뻘쭘하게’ 인사를 받기 시작했다.


학교 사정을 살펴보니 부모들이 장애가 있거나 맞벌이 가정이 많아 아이들이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하고, 끼니도 챙겨 먹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밥도 못 먹은 아이들이 교실에 앉아 있으려니 짜증나는 게 아닐까?’ 박 국장은 취임 한 달째부터 ‘아침밥 먹이기’를 시작했다.


오전 6시부터 직접 장을 보고 식사를 준비해서 교실에 아이들을 모아 밥을 먹이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 삐대던 6학년 ‘짱’이 밥을 먹기 시작하자 패거리들이 몰려왔다. 20명으로 시작한 아침식사 참석자는 이듬해 60명으로 늘었다.


또한 학생들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교육 친화적으로 학교 도색을 하는 ‘컬러링 사업’을 하고, 건물 중정에는 학교 텃밭도 만들었다. 녹천초에서 처음 시행해 다른 학교로 퍼져나간 ‘1호 사업’이었다. 박 국장은 “학교를 떠나고 후임 교장선생님으로부터 교육부 학교폭력실태조사에서 ‘0’이 나왔다는 감사 인사를 받았을 때 제일 기뻤다”고 말했다.


박 국장은 이후 지원청에서도 사업이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해결사’ 역할을 주로 맡았다. 다음달 1일 취임 한 달이 되는 박 국장은 “교육청의 굵직한 방향성에 따라 실무 과장님들이 업무를 하시겠지만, 현장의 디테일한 부분을 놓치지 않고 개선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또한 “전공은 미술이지만, 학창 시절 배구·탁구 등 운동도 잘했다”면서 “남자 일, 여자 일로 나누지 않고 똑같은 대우, 대접을 받는 성평등 교육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은퇴 후 꿈은 ‘분식집 주인’이다. 교육 현장을 떠난 뒤에도 아이들을 만나고 싶기 때문이란다. 박 국장은 “학교 앞에 아이들 10명 정도 들어오면 꽉 차는 작은 떡볶이집을 내서 양껏 먹이고 실컷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 제공>